Journal of Broadcast Engineering
[ Special Paper ]
JOURNAL OF BROADCAST ENGINEERING - Vol. 31, No. 4, pp.575-587
ISSN: 1226-7953 (Print) 2287-913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Jul 2026
Received 26 May 2026 Revised 02 Jul 2026 Accepted 03 Jul 2026
DOI: https://doi.org/10.5909/JBE.2026.31.4.575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룸스케일 워킹과 공간 전이의 설계

송재연a) ; 한상임a),
a)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Designing Room-Scale Walking and Spatial Transition in Affective VR Art
Jae Yeon Songa) ; Sanglim Hana),
a)Chung-Ang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한상임(Sanglim Han) E-mail: sanglimhan@cau.ac.kr

Copyright © 2026 Korean Institute of Broadcast and Media Engineers. All rights reserved.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BY-NC-ND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3.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and not altered.”

초록

본 연구는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룸스케일 워킹과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기존 VR 이동 연구가 탐색 효율과 조작 편의성에 주목해 온 것과 달리, 본 연구는 이동을 감정 전이의 시간 구조를 형성하는 설계 요소로 재해석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작한 추상 VR 아트 사례를 대상으로 협곡, 터널, 분지, 오르막의 네 구간이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의 정서 흐름과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실제 보행, 공간의 협착과 개방, 상향 이동, 추상 환경은 사용자의 신체 행위와 결합하여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을 구성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동의 비가시적 서사화, 공간 상태의 정서적 부호화, 추상 환경의 해석 여백, 신체적 노력의 감정적 기능화, 최소 인터페이스와 감각 집중을 포함한 설계 원리와 제작 파이프라인을 제안한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how room-scale walking and spatial transition structure emotional experience in affective VR art. Moving beyond functional approaches to VR locomotion that emphasize efficiency, usability, and motion sickness reduction, the study reinterprets locomotion as a design element that shapes the temporal structure of emotional transition. Through a practice-based single case analysis of an abstract VR artwork created by the author, the study investigates how four spatial sections, canyon, tunnel, basin, and uphill, correspond to the emotional sequence of pressure, confusion, relief, and recovery. The analysis suggests that actual walking, spatial constriction and openness, upward movement, and abstraction combine with bodily action to form embodied emotional navigation. Based on these findings, the paper proposes design principles for affective VR art, including non-visual narrativization of movement, emotional encoding of spatial states, interpretative openness through abstraction, emotional functionalization of bodily effort, and sensory concentration through minimal interfaces. It also presents a production pipeline for emotion-centered VR creation.

Keywords:

Affective VR Art, Room-Scale Walking, Spatial Transition, Embodied Emotional Navigation, Abstract Environment

Ⅰ. 서 론

가상현실 콘텐츠에서 이동 방식은 오랫동안 탐색 효율, 멀미 저감, 인터페이스 편의성의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기존의 VR 이동 연구는 텔레포트, 컨트롤러 이동, 제자리 걷기, 룸스케일 이동 등 다양한 이동 방식을 비교하면서, 사용자가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가상공간을 탐색할 수 있는지에 주목해 왔다[1]. 이러한 연구들은 VR 환경에서 이동 방식이 사용자 경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밝히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실제 보행에 가까운 이동 방식은 가상공간의 거리감, 장소감, 현존감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으로 논의되어 왔다[2][3]. 그러나 정서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VR 예술에서는 이동 방식을 단순한 조작 방식이나 탐색 수단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이동은 사용자가 공간을 어떤 속도와 긴장감으로 통과하는지, 어디에서 멈추고 다시 출발하는지, 어떤 신체적 부담을 감수하며 다음 공간에 도달하는지를 결정한다. 이 점에서 이동 방식은 인터페이스 설계의 하위 요소가 아니라 정서 경험의 시간 구조를 형성하는 핵심 설계 요소가 된다.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사용자는 이미지를 보는 관람자에 머물지 않는다. 사용자는 자신의 몸을 통해 공간 안에 진입하고, 이동하고, 지체하며, 방향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특정 장면이나 서사적 사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통과하는 신체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예를 들어 좁고 높은 통로를 천천히 지나가는 경험은 압박감이나 위축감을 발생시킬 수 있고, 반복적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미로적 동선은 혼란과 피로를 체감하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넓고 밝은 공간으로 진입하는 구성은 긴장의 이완을 유도할 수 있으며, 경사진 공간을 올라가는 행위는 회복이나 전진의 감각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정서 구조는 시각적 재현만으로 설명되기보다, 신체 이동과 공간 전이가 결합되는 방식 속에서 발생한다.

본 연구는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저자가 제작한 룸스케일 워킹 기반 추상 VR 아트 사례를 분석한다. 본 연구에서 룸스케일 워킹은 사용자가 텔레포트나 컨트롤러 이동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신체 보행을 통해 가상공간을 통과하는 이동 방식을 의미한다. 또한 정서 경험형 VR 아트는 특정 과업 수행이나 정보 전달보다 사용자의 감정 변화, 자기 투사, 감각적 몰입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VR 예술 형식을 뜻한다.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은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이라는 정서 흐름을 네 개의 추상 공간 구간으로 구성하고, 사용자가 실제 보행을 통해 순차적으로 통과하도록 설계된 사례이다. 이 사례는 구체적인 서사나 재현적 오브젝트보다 공간의 폭, 높이, 개방도, 방향성, 경사와 같은 공간 변수를 중심으로 정서 흐름을 구성한다. 따라서 신체 이동과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의 설계 요소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기에 적합하다.

본 연구는 이 과정을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은 보행, 멈춤, 우회, 상승과 같은 신체 이동이 공간 전이의 시간성을 만들고, 이를 통해 정서 변화가 체감되도록 구성하는 VR 경험 설계 방식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이동을 목적지 도달을 위한 기능적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감정이 신체적 행위와 공간 조건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VR이 정서적 매체로 기능할 수 있다는 논의가 현존감과 감정의 상호작용을 강조해 왔다면[4], 본 연구는 그중에서도 실제 보행과 추상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을 조직하는 구체적인 설계 방식에 초점을 둔다.

본 논문의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룸스케일 워킹은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정 전이의 시간 구조를 형성하는가. 둘째, 추상 공간의 폭, 높이, 개방도, 방향성, 경사와 같은 공간 변수는 어떤 방식으로 정서 은유를 구성하는가. 셋째,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정서 경험형 VR 제작에 적용 가능한 설계 원리와 파이프라인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사용자 실험이나 정서 효과 검증이 아니라, 저자가 제작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 실천 기반 단일 사례 설계 분석 방법을 취한다. 분석은 작품의 공간 구성, 이동 패턴, 정서 흐름, 인터페이스 조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특정 정서 효과를 일반화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하나의 VR 아트 사례를 통해 신체 이동과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의 구조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이를 정서 경험형 VR 제작을 위한 설계 원리로 체계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기여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VR 이동 방식을 탐색 효율이나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 경험을 조직하는 설계 요소로 재해석한다. 둘째, 룸스케일 워킹과 추상 공간 전이의 관계를 사례 분석을 통해 구체화한다. 셋째, 정서 경험형 VR 아트 제작에 적용 가능한 설계 원리와 단계적 제작 파이프라인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VR 예술에서 이동이 단순한 조작 방식이 아니라 감정이 형성되고 전이되는 체화된 경험 구조임을 논의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배경

1. VR 이동 방식과 체화된 상호작용

VR 환경에서 이동 방식은 사용자가 가상공간을 탐색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기존 VR 이동 연구는 효율성, 조작 편의성, 공간 탐색 능력, 멀미 저감의 관점에서 다양한 이동 방식을 비교해 왔다[1]. 텔레포트, 컨트롤러 이동, 제자리 걷기, 실제 보행은 각각 다른 체험 조건을 만들며, 특히 실제 보행은 현존감과 공간 지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논의되어 왔다[2][3]. 이러한 논의는 VR 이동 방식이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설계 조건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이동 방식은 탐색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용자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가는 가상공간을 얼마나 빠르게 통과하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떤 지체와 반복을 겪는지, 어느 정도의 신체적 노력을 감수하는지를 결정한다. 특히 룸스케일 워킹은 사용자의 실제 보행을 가상공간의 이동 조건으로 삼기 때문에,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속도, 거리감, 방향 감각, 피로, 주저함이 경험 안에 직접 포함된다. 이 점에서 룸스케일 워킹은 장면 사이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정서 경험의 시간성과 밀도를 구성하는 설계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신체화된 상호작용 개념과 연결된다[5]. 신체화된 상호작용 논의에서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단순한 입력과 출력의 교환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행위자가 몸을 통해 환경과 관계 맺고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 관점에서 사용자는 시스템을 외부에서 조작하는 존재가 아니라, 행위 속에서 경험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이해된다. 따라서 VR에서 이동은 가상공간 내부의 위치를 바꾸는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가 공간을 향해 걷고, 멈추고, 되돌아가고, 다시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경험의 의미를 구성한다.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이러한 논리는 더욱 중요하다. 감정은 특정 이미지나 서사적 사건을 통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공간에 진입하는 방식, 경로를 통과하는 속도, 막다른 길에서 되돌아오는 반복, 경사진 길을 오르는 신체적 부담이 모두 정서 경험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룸스케일 워킹은 기능적 이동 방식이면서 동시에 정서적 이동 방식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이동의 정서적 기능을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의 기초 조건으로 본다.

2. 현존감과 정서 경험의 관계

VR의 정서적 효과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현존감의 문제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존감은 사용자가 가상 환경 안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경험적 상태와 관련된다. 몰입형 가상환경에서 사용자가 가상 상황에 실제처럼 반응하는 이유는 장소 착각과 개연성 착각의 관계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8]. 장소 착각은 사용자가 자신이 그 공간 안에 있다고 느끼는 상태이며, 개연성 착각은 가상 환경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두 조건은 VR 경험이 단순한 시각적 관찰을 넘어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현존감은 감정 전달의 배경 조건으로 작동한다. 사용자가 가상공간을 외부 이미지로만 바라본다면, 공간 변화는 시각적 구성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사용자가 자신의 몸이 그 공간 안에 놓여 있다고 느끼고, 그 공간을 실제로 통과해야 한다고 받아들일 때, 공간의 협착, 어둠, 개방, 상승은 보다 직접적인 정서적 의미를 갖게 된다. 선행연구에서는 VR에서 현존감과 감정이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으며, 가상환경이 정서 반응을 조직하는 매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논의해 왔다[4].

따라서 본 연구에서 다루는 룸스케일 워킹은 현존감을 강화하는 보조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가 실제로 걷고 있다는 감각은 공간 안에 있다는 느낌을 강화하며, 동시에 감정 전이의 조건을 만든다. 좁은 경로를 걷는 경험은 압박의 이미지를 보는 것과 다르며, 막다른 길에서 되돌아가는 행위는 혼란의 장면을 관찰하는 것과 다르다. 사용자가 공간 안에서 직접 이동할 때, 감정은 단순히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행위를 통해 수행되는 경험으로 구성된다. 이 점에서 현존감은 정서 경험의 배경이자, 신체 이동을 통해 감정이 체감되는 조건이다.

3. 공간 은유와 정서 구조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나 장면 구성 요소가 아니다. 공간의 폭, 높이, 깊이, 방향성, 개방도, 경사와 같은 물리적 조건은 사용자의 신체 감각과 결합하면서 특정한 정서적 의미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적 조건이 감정과 연결되는 방식은 개념 은유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6]. 개념 은유 이론에서는 인간이 추상적 개념을 이해할 때 신체 경험에 기반한 은유 구조를 활용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안과 밖, 위와 아래, 전진과 후퇴, 열림과 닫힘 같은 공간적 경험은 감정, 관계, 상태, 변화와 같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이 관점에서 VR 공간의 형태는 정서 경험을 조직하는 감각적 언어가 된다. 좁은 통로와 높은 벽은 압박과 위축의 감각을 유도할 수 있고, 방향을 알기 어려운 갈래길과 막다른 경로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감각을 형성할 수 있다. 넓고 밝은 공간은 해소와 이완의 감각을 유도할 수 있으며, 상승하는 지형은 회복, 전진, 성장의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서가 직접적인 설명이나 상징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공간 조건을 몸으로 통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간 은유는 장식적 표현이 아니라 정서 설계의 구조적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서 경험형 VR에서 감정은 “슬프다”, “불안하다”, “회복된다”와 같은 언어적 설명으로 전달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공간의 압축과 확장, 차단과 개방, 수평 이동과 상향 이동의 차이를 통해 사용자가 감정의 변화를 체감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분석하는 사례 역시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이라는 정서 흐름을 구체적 사건이 아니라 공간 상태의 변화로 구성한다. 이때 공간은 서사의 배경이 아니라 정서 전이를 가능하게 하는 감각적 구조가 된다.

4. 추상 환경과 자기 투사의 가능성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추상 환경은 중요한 설계적 의미를 갖는다. 재현적 오브젝트와 구체적 사건이 많은 환경은 사용자의 해석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할 수 있다. 반면 추상적 공간은 의미를 완전히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사용자의 기억, 감정, 경험이 투사될 여지를 제공한다. 이 점에서 추상성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는 설계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시각 중심적 재현보다 몸 전체의 감각, 기억,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공간 경험을 중시하는 논의와 연결된다[7]. 이 논의에서 공간은 눈으로만 파악되는 대상이 아니라, 몸의 감각과 기억을 통해 경험되는 환경으로 이해된다. 이를 VR 아트에 적용하면, 추상적 환경은 구체적 사물의 재현보다 사용자의 감각적 개입과 정서적 투사를 활성화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 빛, 색채, 안개, 규모감, 거리감, 음향의 밀도와 같은 요소는 특정한 이야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유도할 수 있다.

정서 경험형 VR에서 추상성은 특히 자기 투사의 구조와 연결된다. 구체적인 인물, 사건, 장소가 제시될 경우 사용자는 작품이 제공하는 서사를 해석하는 위치에 놓인다. 그러나 추상적 공간에서는 사용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간의 의미를 채워 넣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때 공간은 하나의 완성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사용자가 감정을 구성하는 장이 된다. 따라서 추상 환경은 정서 경험을 약화시키는 요소라기보다, 감정의 개인적 해석과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5.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의 이론적 위치

앞선 논의를 종합하면,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은 세 가지 이론적 기반 위에 놓인다. 첫째, VR 이동 연구는 이동 방식이 현존감과 공간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1][2][3]. 둘째, 신체화된 상호작용 이론은 사용자가 몸을 통해 환경과 관계 맺으며 의미를 구성한다는 점을 설명한다[5]. 셋째, 공간 은유와 감각적 공간 경험에 대한 논의는 공간의 형태와 분위기가 정서 구조를 조직할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6][7].

이 세 관점을 결합하면,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이동은 단순한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감정의 구성 과정이 된다. 사용자는 공간을 이동하면서 장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행위를 통해 정서의 흐름을 수행한다. 공간의 협착과 개방, 방향 상실과 재정렬, 하강과 상승, 어둠과 밝음은 모두 사용자의 몸을 거쳐 감정적 의미로 전환된다. 따라서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은 이동 방식, 공간 상태, 신체적 노력, 추상적 해석 여백이 결합되어 정서 경험을 형성하는 설계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음 장에서 룸스케일 워킹 기반 추상 VR 아트 사례의 공간 구성과 이동 구조를 분석한다. 특히 네 개의 공간 구간이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의 정서 흐름과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봄으로써, 신체 이동과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의 설계 요소로 작동하는 방식을 구체화한다.


Ⅲ. 연구 방법 및 사례 개요

1. 실천 기반 단일 사례 연구

본 연구는 저자가 제작한 룸스케일 워킹 기반 추상 VR 아트 작품을 대상으로 한 실천 기반 단일 사례 연구이다. 연구의 목적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설정된 공간 구성, 이동 방식, 정서 흐름, 인터페이스 조건을 분석하고, 신체 이동과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형 VR 아트의 설계 원리로 작동하는 방식을 밝히는 데 있다.

분석 대상 작품은 사용자가 텔레포트나 컨트롤러 이동 없이 실제 보행을 통해 추상 공간을 통과하도록 구성되었다. 이 작품에서 이동은 단순한 위치 변화가 아니라, 압박, 혼란, 완화, 회복으로 이어지는 정서 흐름을 체감하게 하는 핵심 구조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작품의 공간적 구성과 이동 경험을 중심으로, 정서 경험이 신체적 행위와 공간 전이를 통해 조직되는 방식을 살펴본다.

이러한 접근은 디자인 산출물을 연구 지식이 생성되는 매개로 보는 Research through Design의 관점과 연결된다[9]. 본 연구에서 VR 작품은 완성된 창작 결과물인 동시에, 정서 경험형 VR 설계 원리를 도출하기 위한 분석 대상이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이루어진 공간 배열, 이동 규칙, 감각적 조정, 인터페이스 선택은 모두 정서 경험을 구성하는 설계 판단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저자의 작품 사례를 통해 룸스케일 워킹과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을 형성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서 경험형 VR 아트 제작에 적용 가능한 설계 원리를 도출하고자 한다.

2. 분석 대상 작품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은 저자가 제작한 1인칭 룸스케일 VR 아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용자가 텔레포트, 조이스틱 이동, 자동 이동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보행을 통해 가상공간을 통과하도록 설계되었다. 사용자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네 개의 추상 공간을 지나가며, 각 공간은 압박, 혼란, 완화, 회복으로 이어지는 정서 흐름에 대응한다.

작품의 공간은 구체적인 인물, 사건, 장소를 재현하기보다 추상적인 지형과 색채, 빛, 규모감, 경로 구조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는 사용자가 명확한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신체 움직임과 감각을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해석하도록 하기 위한 설계이다. 따라서 작품에서 정서 경험은 대사나 텍스트, 명시적 상징을 통해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간의 협착과 개방, 시야의 차단과 확보, 반복적 이동과 상승 동선이 사용자의 보행 과정과 결합하면서 단계적으로 형성된다.

작품은 협곡, 터널, 분지, 오르막의 네 구간으로 구성된다. 각 구간은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의 정서 흐름과 대응하며, 세부 공간 구성은 Ⅲ.4절에서 설명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점은 정서 흐름이 단순히 시각적 장면의 변화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실제 이동을 통해 경험된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다음 장면으로 즉시 전환되지 않고, 자신의 걸음으로 공간을 통과해야 한다. 걷기, 멈춤, 되돌아가기, 다시 선택하기, 올라가기와 같은 행위는 작품의 체험 시간을 구성하며, 각 구간의 정서적 의미를 신체적으로 체감하도록 만드는 핵심 요소가 된다. 그림 1은 분석 대상 작품의 네 개 공간 구간을 보여준다.

Fig. 1.

Four VR spatial sections according to the emotional sequence

3. 분석 기준과 자료 범위

본 연구의 분석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설정된 공간 구성, 이동 방식, 정서 흐름, 인터페이스 조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분석 자료는 작품의 공간 설계안, 구간별 이동 구조, 제작 과정에서 정리된 정서 키워드, 구현 이미지, 체험 동선으로 구성된다. 이 자료들은 저자가 제작한 VR 작품이 신체 이동과 공간 전이를 통해 정서 경험을 어떻게 조직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근거로 활용된다.

분석 기준은 네 가지로 설정하였다. 첫째, 공간 구성은 각 구간의 폭, 높이, 개방도, 경사, 시야 확보 정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둘째, 이동 패턴은 사용자가 전진, 정지, 우회, 회귀, 상승과 같은 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셋째, 정서 전이는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의 흐름이 공간의 단계적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분석한다. 넷째, 인터페이스 조건은 텔레포트와 컨트롤러 이동을 배제하고 실제 보행을 중심으로 구성한 선택이 체험의 시간성과 신체 감각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다.

이 분석 기준은 앞 장에서 논의한 VR 이동 방식, 체화된 상호작용, 현존감, 공간 은유, 추상 환경의 자기 투사 가능성에 기반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작품을 시각적 결과물로만 다루지 않고, 공간 조건과 이동 행위가 결합되어 정서 경험을 형성하는 설계 구조로 분석한다. 표 1은 본 연구의 분석 기준을 정리한 것이다.

Case analysis criteria

또한, 본 연구의 설계 방향이 실제 사용자 경험과 어떻게 조응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작품을 체험한 12명(남성 6명, 여성 6명)을 대상으로 사후 설문조사(Pilot Test)를 진행하였다. 이들의 정성적 피드백은 4장의 사례 분석 과정에서 저자의 설계 의도를 뒷받침하는 교차 검증 자료로 활용된다.

4. 공간 구성과 정서 흐름

분석 대상 작품은 협곡, 터널, 분지, 오르막의 네 개 구간으로 구성된다. 각 구간은 독립적인 장면이라기보다 압박, 혼란, 완화, 회복으로 이어지는 정서 흐름의 단계로 배열된다. 사용자는 이 네 구간을 실제 보행을 통해 순차적으로 통과하며, 공간의 폭, 높이, 개방도, 방향성, 경사 변화를 몸으로 경험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림 2는 작품의 네 구간과 정서 흐름의 대응 구조를 요약한 것이다.

Fig. 2.

Spatial-emotional correspondence structure of room-scale VR art

첫 번째 협곡 구간은 좁은 경로와 높은 벽으로 구성된다. 약 0.8~1.2미터의 제한된 경로 폭과 굽어진 동선은 사용자의 시야와 이동 방향을 제한한다. 이 구간은 공간적 협착과 차단된 시야를 통해 압박과 위축의 감각을 유도하는 출발 구간으로 설정되었다.

두 번째 터널 구간은 어둡고 협소한 갈래길과 막다른 경로로 구성된다. 사용자는 한 방향으로 진입했다가 다시 돌아 나오거나 다른 경로를 선택해야 한다. 이 구간은 반복적인 우회와 회귀 동선을 통해 혼란과 방향 상실의 상태를 공간적으로 구성한다.

세 번째 분지 구간은 이전 구간과 대비되는 넓은 공간과 열린 시야를 제공한다. 경로 폭은 약 4~5미터로 확장되며, 조명과 가시거리가 확보되어 공간의 개방성이 강조된다. 이 구간은 협곡과 터널 구간 이후의 정서적 전환점으로 배치되며, 완화와 이완의 감각을 유도하도록 구성되었다.

네 번째 오르막 구간은 상향 경사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사용자는 경사를 따라 위로 이동하며 마지막 지점에 도달한다. 이 구간은 상승 동선을 통해 회복, 전진, 도달의 감각을 구성하는 마무리 구간으로 설정되었다.

이처럼 작품의 네 구간은 공간 형태와 정서 흐름이 단계적으로 대응하도록 배열되어 있다. 협착된 공간에서 출발해 혼란스러운 경로를 지나고, 개방된 공간을 거쳐 상승 지형에 도달하는 흐름은 압박에서 회복으로 이동하는 정서 구조를 만든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공간 구성이 룸스케일 워킹, 정서 은유, 추상 환경, 신체적 노력의 측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한다.


Ⅳ. 사례 분석

본 장에서는 앞 장에서 제시한 네 구간의 공간-정서 대응 구조를 바탕으로, 룸스케일 워킹 기반 추상 VR 아트에서 신체 이동과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의 설계 구조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분석은 이동의 시간성, 공간 전이와 정서 은유, 추상 환경의 자기 투사, 신체적 노력과 감정 전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표 2는 각 구간의 공간 조건, 이동 패턴, 정서적 기능을 비교한 것이다.

Spatial variables and emotional correspondences by section

1. 룸스케일 워킹과 정서적 시간성

이 사례의 첫 번째 특징은 이동이 단순한 탐색 기능이 아니라 경험의 시간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룸스케일 워킹 방식에서 사용자는 공간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사용자는 자신의 발걸음을 통해 다음 공간에 도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속도, 멈춤, 주저함, 되돌아감이 경험의 일부가 된다.

텔레포트 방식에서는 공간 전이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사용자는 현재 위치에서 다음 위치로 즉시 이동하며, 이동 과정에 포함되는 시간과 신체적 노력은 최소화된다. 반면 룸스케일 워킹에서는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경험 안에 남는다. 실제 보행이 가상환경의 장소감과 현존감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선행 연구를 고려할 때[2][3], 이 사례의 이동 방식은 단순한 조작 선택이 아니라 정서 경험을 시간적으로 조직하는 장치로 해석될 수 있다.

협곡 구간은 이러한 시간 구조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사용자는 좁고 높은 벽 사이를 걸어가지만, 굽어진 경로 때문에 끝 지점을 즉시 확인할 수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협곡이 압박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점만이 아니다. 사용자가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를 직접 걸어가야 한다는 조건이 압박과 불확실성의 시간을 만든다. 따라서 협곡 구간의 정서적 효과는 장면의 이미지 자체보다, 그 장면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보행 시간과 신체적 지속성을 통해 구성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터널 구간에서도 이동은 정서의 시간성을 형성한다. 사용자는 갈래길을 선택하고, 막다른 길에 도달하면 다시 돌아 나와야 한다. 이 반복적 회귀는 효율적인 동선을 방해하지만, 바로 그 비효율성이 혼란과 불확실성의 구조를 만든다. 사용자가 헤매도록 구성된 시간은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정서 전이를 구성하는 설계 요소로 기능한다. 이 점에서 이동은 장면 사이를 연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감정이 형성되는 시간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실제 체험자 설문 결과에서도 이러한 설계 의도가 확인되었다. 대다수의 체험자는 컨트롤러 이동 대신 직접 걷는 행위가 ‘실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직관적 몰입’을 준다고 응답했다. 특히 ‘만약 컨트롤러 이동 방식이었다면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직접 체험한다는 느낌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응답은 본 사례의 룸스케일 워킹이 단순한 이동을 넘어 주체적인 정서 전이의 핵심 조건임을 뒷받침한다.

2. 공간 전이와 정서 은유

두 번째 특징은 공간 상태의 변화가 정서를 직접 설명하지 않고, 신체 경험에 기반한 은유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Lakoff와 Johnson은 인간이 추상적 감정과 상태를 안과 밖, 위와 아래, 열림과 닫힘, 전진과 후퇴 같은 신체 경험의 구조를 통해 이해한다고 보았다[6]. 이 관점에서 VR 공간의 폭, 높이, 방향성, 개방도, 경사는 단순한 조형 요소가 아니라 정서 구조를 구성하는 설계 변수로 볼 수 있다.

협곡 구간의 좁은 폭과 높은 벽은 압박과 위축의 은유로 작동한다. 이때 0.8~1.2미터라는 폭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폭이 사용자의 신체 크기와 관계를 맺으면서 “좁다”, “막혀 있다”, “통과해야 한다”는 감각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공간의 협착은 시각적 상징이 아니라, 몸의 이동 가능성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본 작품에서는 VR 제작 프로그램(Unreal Engine) 상에서 기본으로 설정된 체험자의 크기를 기준으로 설정하고 인체 팔의 평균적인 길이를 고려하여 최소한의 폭으로 설계하였다.

터널 구간의 갈래길과 막다른 경로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은유를 형성한다. 사용자는 한 방향을 선택하지만, 선택이 곧바로 진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되돌아가야 하는 구조는 방향 상실의 감각을 신체적으로 만든다. 이때 혼란은 설명되는 감정이 아니라, 이동의 실패와 반복을 통해 체감되도록 설계된 상태이다.

분지 구간은 앞선 두 구간과 대비되는 개방의 구조를 제공한다. 넓어진 공간, 밝아진 조명, 확보된 가시거리는 긴장의 이완과 연결된다. 이 완화의 감각은 분지 구간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협곡과 터널에서 누적된 압박과 혼란이 있었기 때문에, 분지의 개방성은 상대적인 해소감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공간 은유는 개별 장면의 속성만이 아니라, 구간 사이의 차이와 순서 속에서 발생한다.

오르막 구간의 상향 이동은 회복과 성장의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사용자는 마지막 지점에 즉시 도달하지 않고, 경사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상승은 시각적 방향일 뿐 아니라 신체적 노력의 방향이다. 이때 위로 올라가는 행위는 목표를 향한 전진, 상태의 변화, 회복의 가능성을 신체적으로 형상화한다. 표 3과 같이, 좁은 공간에서 넓은 공간으로의 전이는 체험자들에게 단순한 시각적 변화가 아니라 ‘불안’에서 ‘해방’으로 이어지는 극적인 정서적 카타르시스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

Summary of participants’ subjective emotional changes by spatial transition

3. 추상 환경과 자기 투사

세 번째 특징은 추상적 환경이 정서 경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투사의 여백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 사례는 구체적인 인물, 사건, 장소, 설명적 오브젝트를 최소화한다. 이러한 구성은 사용자가 특정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빛, 색, 규모, 거리, 방향, 소리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간 위에 투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시각 중심적 재현보다 몸의 감각, 기억, 상상력을 중시하는 공간 경험 논의는 추상적 VR 환경을 정보가 부족한 미완성 공간이 아니라, 사용자의 감각과 기억을 활성화하는 구조로 이해하게 한다[7]. 구체적 오브젝트가 적을수록 사용자는 작품이 제시한 의미를 해독하기보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공간의 분위기와 연결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사례에서 추상성은 완전한 의미의 공백을 뜻하지 않는다. 네 구간은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이라는 정서적 방향성을 갖고 있으며, 사용자는 이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다만 각 정서가 특정 사건이나 문장으로 고정되지 않을 뿐이다. 협곡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압박의 공간 조건으로 제시되고, 터널은 특정 사건의 배경이 아니라 혼란의 동선 구조로 제시된다. 분지와 오르막 역시 각각 완화와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그 의미를 하나의 이야기로 확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추상성은 정서 경험의 모호함을 방치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사용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공간 감각 위에 투사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 전략이다.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추상 환경은 의미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의미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든다.

4. 신체적 노력과 감정 전이

네 번째 특징은 신체적 노력이 감정 전이의 설득력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인터페이스 설계에서는 사용자의 피로와 지체가 최소화되어야 할 요소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는 적절히 설계된 신체적 노력이 감정의 밀도를 형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신체화된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의미는 사용자의 행위 속에서 구성된다[5]. 이 사례에서 사용자는 정서를 설명받는 것이 아니라, 이동 행위를 통해 정서 흐름을 수행한다. 터널 구간에서 막다른 길에 도달하고 다시 되돌아가는 반복은 단순한 동선상의 불편이 아니다. 이러한 반복적 이동은 혼란과 답답함을 신체적 피로로 전환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사용자가 다른 길을 찾아 다시 걷는 과정은 혼란의 상태를 공간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혼란을 몸으로 감당하게 한다.

분지 구간의 완화감도 신체적 노력의 누적과 연결된다. 사용자가 협곡과 터널을 거치지 않고 즉시 분지에 도달한다면, 넓고 밝은 공간은 단순한 장면 변화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좁은 길과 반복적 회귀를 통과한 뒤 분지에 진입할 때, 개방감은 이전 구간에서 누적된 압박과 피로에 대한 상대적 해소로 작동한다. 즉, 완화는 시각적 변화만이 아니라 앞선 이동의 누적을 통해 정서적 무게를 얻는다.

오르막 구간 역시 신체적 노력의 정서적 기능을 보여준다. 사용자는 마지막 목표 지점에 자동으로 이동하지 않고, 경사를 따라 직접 올라가야 한다. 상승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부담은 회복의 감각을 더 구체적으로 만든다. 도달은 단순히 장면이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사용자의 보행과 노력을 통해 획득되는 결과가 된다.

다만 신체적 노력은 무조건 강화되어야 하는 요소가 아니다. VR 전시 환경에서는 안전, 체험 시간, 사용자 피로도, 공간 크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피로를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정서 흐름과 연결되는 만큼의 신체적 부담을 정밀하게 배치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신체적 노력은 기능적 불편이 아니라 감정적 기능을 갖는 설계 변수로 이해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물리적 한계가 오히려 정서적 밀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한 체험자는 ‘현실의 벽에 충돌할까 봐 불안했던 감정이 오히려 미로라는 공간의 몰입감을 더 높였다’고 응답했다. 또한 오르막을 끝까지 올랐을 때 체험자들은 단순히 체험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넘어, ‘낯선 미로를 무사히 탈출했다는 성취감’과 ‘내면의 답답함을 스스로 극복해 냈다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보고했다. 이는 신체적 노력이 감정적 기능으로 훌륭하게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5.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의 구조

앞선 분석을 종합하면, 이 사례에서 정서 경험은 개별 장면의 시각적 인상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사용자는 협곡, 터널, 분지, 오르막의 네 구간을 순차적으로 통과하며, 각 구간에서 서로 다른 신체 이동과 공간 상태를 경험하도록 구성된다.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은 독립된 감정이 아니라, 이동의 순서와 누적 속에서 하나의 정서 흐름으로 조직된다.

이러한 구조가 본 연구에서 말하는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이다.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은 사용자의 보행, 멈춤, 회귀, 상승과 같은 신체 행위가 공간의 협착, 분기, 개방, 상승 구조와 결합하여 정서 변화를 구성하는 설계 방식이다. 이 개념은 VR 이동을 단순한 위치 변경이 아니라, 감정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신체적으로 수행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 사례의 핵심은 룸스케일 워킹, 추상 공간, 정서 은유가 개별적으로 작동한다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요소들이 하나의 경험 구조 안에서 결합된다는 점이다. 실제 보행은 정서 전이에 시간을 부여하고, 공간 상태는 감정의 은유적 구조를 만들며, 추상 환경은 사용자의 자기 투사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통과하면서 감정의 흐름을 수행하게 된다.

이 분석은 다음 장에서 제안할 설계 원리와 제작 파이프라인의 근거가 된다. 즉, 이동의 비가시적 서사화, 공간 상태의 정서 부호화, 추상성의 해석 여백 확보, 신체적 노력의 감정적 기능화, 최소 인터페이스와 감각 집중은 본 장의 사례 분석에서 도출된 핵심 원리로 정리될 수 있다.


Ⅴ. 설계 원리 및 제작 파이프라인

본 장에서는 앞선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정서 경험형 VR 아트 제작에 적용 가능한 설계 원리와 제작 파이프라인을 제안한다. 이 제안은 특정 작품의 제작 절차를 일반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룸스케일 워킹과 추상 공간 전이를 통해 정서 경험을 구성하는 설계 방식을 정리하기 위한 개념적 지침이다. 따라서 본 장의 설계 원리는 정서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증한 모델이 아니라, 단일 사례의 공간 구성과 이동 구조를 분석하여 도출한 설계 지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1. 설계 원리

첫째, 이동의 비가시적 서사화이다. 이동은 장면 사이의 연결 수단이 아니라 감정 변화가 전개되는 시간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사용자의 보행, 멈춤, 주저함, 되돌아감, 재출발은 명시적 서사 없이도 정서 흐름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행위 속에서 의미가 구성된다는 신체화된 상호작용의 관점과 연결된다[5]. 그림 3은 작품 속에서 체험자가 이동하는 동선을 표현한 것이다.

Fig. 3.

Spatial layouts of the four stages

둘째, 공간 상태의 정서적 부호화이다. 공간의 폭, 높이, 개방도, 방향성, 경사, 조명은 정서 경험을 구성하는 주요 변수이다. 좁고 높은 공간은 압박을, 갈래길과 막다른 길은 혼란을, 넓고 밝은 공간은 완화를, 상향 경사는 회복과 전진의 감각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신체 경험을 통해 추상적 감정을 이해한다는 공간 은유의 논의와 연결된다[6].

셋째, 추상 환경의 해석 여백 확보이다.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추상성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조건이다. 구체적 오브젝트와 사건을 줄이고, 빛, 색채, 규모, 안개, 음향과 같은 감각 요소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할 때 사용자의 자기 투사를 위한 여백을 확보할 수 있다[7].

넷째, 신체적 노력의 감정적 기능화이다. 룸스케일 워킹에서 발생하는 피로, 지체, 우회, 상승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정서 전이를 강화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다만 신체적 부담은 무조건 강화되어서는 안 되며, 안전성, 체험 시간, 공간 크기, 사용자 피로도를 고려한 범위 안에서 조절되어야 한다.

다섯째, 최소 인터페이스와 감각 집중이다. 지속적인 안내창, 복잡한 조작, 과도한 UI는 사용자의 주의를 공간 경험에서 과업 수행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정서 경험형 VR에서는 인터페이스를 최소화하고, 공간 구조, 조명, 소리, 시야 구성을 통해 사용자의 이동과 감정 흐름을 유도하는 것이 적절하다.

2. 제작 파이프라인

앞서 제안한 설계 원리는 다음의 다섯 단계 제작 파이프라인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림 4는 정서 경험형 VR 아트 제작을 위한 단계적 흐름을 나타낸다.

Fig. 4.

Production pipeline for affective VR art

첫 번째 단계는 정서 흐름 설정이다.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단일 키워드가 아니라 시간적 흐름으로 정리한다. 본 사례의 경우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의 순차 구조가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단계는 공간 은유 변환이다. 정서 흐름을 공간 변수로 번역한다. 압박은 협착된 통로와 제한된 시야로, 혼란은 갈래길과 회귀 동선으로, 완화는 개방된 공간과 밝은 조명으로, 회복은 상승 구조와 도달 지점으로 변환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이동 규칙 설계이다. 사용자가 각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통과할 것인지 결정한다. 전진, 정지, 우회, 회귀, 상승과 같은 이동 패턴은 정서 흐름과 연결되어야 하며, 이동 방식은 조작 편의성뿐 아니라 감정 전이의 시간성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네 번째 단계는 감각 요소 조정이다. 색채, 조도, 안개, 음향, 잔향, 시야 범위 등을 조율하여 공간의 정서적 분위기를 구성한다. 이때 감정을 직접 설명하는 상징이나 텍스트는 최소화하고, 사용자가 정서적 방향을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다섯 번째 단계는 전시 적용 점검이다. 실제 체험 환경에서 물리적 동선, 안전성, 체험 시간, 피로도, 장비 조건을 검토한다. 특히 룸스케일 워킹을 활용하는 경우, 가상공간의 이동 구조와 실제 전시장의 물리적 범위가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이 파이프라인은 고정된 절차라기보다 반복적으로 조정되는 제작 구조이다. 예를 들어 특정 구간의 물리적 부담이 과도하거나, 이동 방향이 지나치게 불명확한 경우에는 공간 은유 변환이나 이동 규칙 설계 단계로 되돌아가 수정할 수 있다. 따라서 정서 경험형 VR 제작에서는 정서 흐름, 공간 구조, 신체 이동, 전시 조건을 함께 점검하는 순환적 설계 과정이 필요하다.


Ⅵ. 결 론

본 연구는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룸스케일 워킹과 공간 전이가 정서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하였다. 기존 VR 이동 연구가 주로 탐색 효율, 조작 편의성, 멀미 저감, 현존감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면, 본 연구는 이동을 정서 경험의 시간 구조를 형성하는 설계 요소로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작한 룸스케일 워킹 기반 추상 VR 아트 사례를 분석하고, 협곡, 터널, 분지,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네 개의 공간 구간이 압박, 혼란, 완화, 회복의 정서 흐름과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룸스케일 워킹은 단순한 위치 이동 방식이 아니라 정서 전이에 시간을 부여하는 구조로 작동하였다. 사용자는 다음 장면으로 즉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보행, 멈춤, 우회, 회귀, 상승을 통해 공간을 순차적으로 통과하도록 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좁은 경로와 높은 벽은 압박과 위축의 은유로, 갈래길과 막다른 경로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구조로, 넓고 밝은 분지 공간은 완화와 이완의 전환점으로, 상향 경사는 회복과 전진의 감각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또한 구체적인 서사나 재현적 오브젝트를 최소화한 추상 환경은 사용자의 기억과 감정이 투사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본 연구는 신체 이동, 공간 전이, 정서 은유, 추상 환경이 결합하여 정서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을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으로 개념화하였다.

이러한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정서 경험형 VR 아트 제작을 위한 다섯 가지 설계 원리와 제작 파이프라인을 제안하였다. 설계 원리는 이동의 비가시적 서사화, 공간 상태의 정서적 부호화, 추상 환경의 해석 여백 확보, 신체적 노력의 감정적 기능화, 최소 인터페이스와 감각 집중으로 정리된다. 제작 파이프라인은 정서 흐름 설정, 공간 은유 변환, 이동 규칙 설계, 감각 요소 조정, 전시 적용 점검의 단계로 구성된다. 이 제안은 정서 경험형 VR 아트에서 이동과 공간 설계가 단순한 배경 조건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조직하는 핵심 제작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본 연구는 저자가 제작한 단일 사례를 대상으로 한 실천 기반 설계 분석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제안한 설계 원리와 파이프라인은 정서 효과를 일반화하는 실증 모델이라기보다, 정서 경험형 VR 아트 제작을 위한 개념적 지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후속 연구에서는 복수의 VR 아트 사례 비교, 사용자 체험 관찰, 심층 인터뷰, 이동 방식 간 비교 분석을 통해 본 연구에서 제안한 체화된 감정 내비게이션의 적용 가능성을 더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본 연구는 VR 아트에서 이동을 기능적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정서 경험의 구조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를 통해 정서 중심 VR 콘텐츠 제작에서 신체 이동과 공간 전이가 보다 적극적인 설계 언어로 활용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가상융합대학원의 연구 결과로 수행되었으며 (RS-2024-00418847), 2026년도 교육부 및 서울특별시의 재원으로 서울RISE센터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의 결과입니다 (2026-RISE-01-024-06).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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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재 연

- 2019년 2월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사

- 2019년 8월 ~ 현재 : (주)엠라인스튜디오 PD

- 2022년 4월 ~ 2025년 7월 : (주)멀티캠퍼스 PM

- 2024년 3월 ~ 현재 :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예술공학 석사과정

- ORCID : https://orcid.org/0009-0001-0283-5138

- 주관심분야 : XR, AI, 게임엔진, 에듀테크

한 상 임

- 2013년 :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BFA

- 2017년 :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MFA

- 2025년 3월 ~ 현재 : 조교수,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 ORCID : https://orcid.org/0009-0008-5134-5275

- 주관심분야 : 인공지능 예술, 미디어아트, 현대미술, 게임엔진

Fig. 1.

Fig. 1.
Four VR spatial sections according to the emotional sequence

Fig. 2.

Fig. 2.
Spatial-emotional correspondence structure of room-scale VR art

Fig. 3.

Fig. 3.
Spatial layouts of the four stages

Fig. 4.

Fig. 4.
Production pipeline for affective VR art

Table 1.

Case analysis criteria

Analysis Criterion Key Elements Analytical Focus
Spatial Composition Width, height, openness, slope, visibility Spatial states as emotional metaphors
Movement Pattern Forward movement, stop, detour, return, ascent Walking as temporal structure of emotional transition
Emotional Transition Pressure, confusion, relief, recovery Sequential emotional flow by section
Interface Condition Room-scale walking, minimal operation, guidance Locomotion's role in immersion and bodily perception

Table 2.

Spatial variables and emotional correspondences by section

Section Spatial Conditions Movement Pattern Emotional Function Related Theory
Canyon Narrow path, high walls, limited view Forward walking, hesitation Pressure, constriction Spatial metaphor[6]
Tunnel Dark branches, dead ends Detour, return, repeated search Confusion, uncertainty Embodied interaction[5]
Basin Wide space, bright light, open view Free walking, pace recovery Relief, relaxation Presence and emotion[4][8]
Uphill Upward slope, target point Ascent, arrival Recovery, growth Spatial metaphor[6]

Table 3.

Summary of participants’ subjective emotional changes by spatial transition

Section Emotional Function Excerpts of Participants' Subjective Responses
Canyon/Tunnel Pressure, constriction, confusion "Scary and suffocating", "Felt anxious due to the dark and narrow space", "A vague feeling of being chased"
Basin/Uphill Relief, relaxation, recovery "Felt refreshed and uplifted by the wide-open space", "Felt as if the suffocating feeling had disappeared", "Felt hopeful and free"